평화와 공동체적 나눔이 충만하여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하나된 한반도를 열어가는
| 구분 | 160차 | |
|---|---|---|
| 제목 | 기억 치유로서의 통일: 한국 개신교회 통일담론과 과제 | |
| 일시 | 2023.02.16. | |
| 장소 | 온라인 세미나 | |
| 발표문 | ||
| 발표 목차 및 요약 | ||
![]() 기억 치유로서의 통일: 한국 개신교회 통일담론과 과제
1. 한국 개신교회의 통일담론
- 한국 개신교회의 통일담론=교회에서 통일에 대한 공개적으로 이야기되는 방식. 지배담론은 이에 어긋나는 소수담론을 규제하는 효과가 있음. 1-1. 통일담론의 역사전 전개
- 1930년대 신학논쟁과 분열(예장, 기장), 그리나 60년대까지는 보수와 진보가 반북·반공의식 공유 - 70-80년대 진보교회가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나서면서 ‘88선언’을 중심으로 새로운 통일담론 등장 - ‘88선언’에 충격을 받은 보수교회의 결집과 한기총의 ‘96선언’발표→보수·복음주의 통일담론의 확산 - 90년대 북한 식량난 시기 보수·진보 연합 북한돕기운동 전개 (‘남북나눔’) - 2000년대 고조되었던 보수·진보 연합노력이 약화 되면서 통일담론의 분열 재현 1-2. 통일운동의 진보통합적 흐름
- 1980년대: 북한 기독교 대표들(조선그리스도교연맹)과 교류, 1988 통일선언, 1989 문익환 목사방북과 구속 - 1990년대: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 동력 약화, 보수·진보 연합 북한동포 돕기, 한기총의 북한교회재건운동 불참 - 2000년대: NCCK-한기총 8·15 공동선언(2000,2007,2010), 2007년 NCCK-한기총 통합논의 무산, 세계교회와 연대 에큐메니칼 운동 1-3. 통일운동의 보수통합적 흐름
- 1980년대: 교회중심의 기도회 외에 움직임 부재, 88선언에 대응하기 위해 결집 시작, 1989 한국기독교총연합회(한기총) 설립 및 통일논의 시작 - 1990년대: 북한 복음화를 위한 통일 ‘96선언’ - 2000년대: 교회 탈북민 부서 설치, 대북 인도적 지원, 2008 봉수교회 및 2014 칠골교회 재건축 후원, 2010 평양과기대 설립 후원, 성경반입, 지하교회 지원, 탈불자 구출 지원 1.4 교회 통일담론의 과제
- 통일담론의 과도한 이념화 현상은 정치권의 통일담론이 진지한 성찰 없이 교회에 이식된 결과 - 일부 교인들의 정치집회 참여는 애국심과 기독신앙의 결합. 이로 인해 촉발된 이념갈등이 교회 내부에서도 재현 됨. - 경직된 반공·반북주의의 저변에는 역사적 집단 트라우마가 있음. 합리적 비판일지라도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와 존중 없이는 즉각 정서적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. 트라우마는 이성적 사고를 방해하기 때문. - 그러나 냉전적 사고를 극복하지 못하면 통일과 평화에 기여하는 교회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음. 통합적 사고에 기초한 새로운 통일담론이 필요한 이유. - 월남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전쟁, 이산, 재산박탈, 핍박, 학살의 트라우마 기억 전수. - 기억은 매체, 기념물, 기념일 등의 문화기억으로 저장되고 표상되며 집단정체성을 형성함. - 한국교회가 자신에게 부여해온 피해자 정체성은 반북·반공주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었음. 2. 집단 트라우마 기억의 문제 - 월남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전쟁, 이산, 재산박탈, 핍박, 학살의 트라우마 기억 전수. - 기억은 매체, 기념물, 기념일 등의 문화기억으로 저장되고 표상되며 집단정체성을 형성함. - 한국교회가 자신에게 부여해온 피해자 정체성은 반북·반공주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었음. 2-1. 집단기억과 트라우마 전이
- 전체로서의 집단은 부분으로서의 구성원들의 합 이상이다. (Kurt Lewin, 1939) - 역사가의 전이와 반영을 통해 독자들에게 역사적 사건의 충격이 전해짐으로서 트라우마의 전이가 나타난다. (Dominic LaCapra, 1998) -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트라우마라고 인정하고 이에 대한 재현과정이 이루어질 때 사회문화적 타원의 트라우마가 성립한다. (Jeffrey C. Alexander, 2004) - 역사적 집단 트라우마는 장기화된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다. (Jeremy Rinker, Jerry Lowler, 2018) 2-2. 남과 북: 트라우마 기억 공동체
- 일제강점과 분단, 전쟁을 통해 남과 북 양쪽 다 식민·분단·전쟁·이산 트라우마를 겪음. - 분단된 한반도에서 극심한 이념갈등의 뿌리는 민족상잔의 역사적 비극 6·25전쟁 -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냉전이 끝났지만, 적대적 분단 상태의 한반도는 여전히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못하나 채 고착. - 북하은 ‘전쟁기억 공동체’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체제유지명분으로 삼음(1인 독재, 세습, 핵 개발) - 한미연합군사훈련은 생존을 위협받는 전쟁기억 강화를 추동함. - 북한은 미국이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하고 한국전쟁을 ‘조국해방전잭’이라고 명명. - 미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막대한 인적·물적 피해를 입음. - 정전협정일(7.27)을 승리기념일로 지정할 정도로 승리를 강조하는 입장이므로 구체적 인명피해는 제시하지 않고 양민학살의 잔혹성만 부각하는 반미·반제교양교육 실시. 2-3. 남북 트라우마의 충돌지점: 탈북민
- 반복되는 북한의 도발과 전쟁 위협은 전쟁의 상대편이었던 북한 출신 구성원들에 대한 의심과 불신 촉발. - 탈북민의 남한 사회의 정착은 탈북민 개인의 적응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을 향한 경계와 적대감의 문제임. 표와 행위는 역사적 집단 트라우마에 근거한 측면이 있음. - 남북 사람들의 접촉 자체가 인식개선을 가져오지 않음. 인정과 수용의 태도일 때 긍정과 수용의 태도일 때 긍정적 인식 변화 가능. - 한국교회가 탈북민을 구제와 선교대상으로만 간주할 경우, 이에 대한 탈북민의 거부감 또는 선의의 이용 형태로 인해 교회의 탈북민 사역에 이중적 어려움 발생. 3.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- 과거의 기억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 의미가 해석되지 않아서임. 일제강점기를 갓 벗어난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의 의미가 여전히 해석되지 않음. - 트라우마 기억이 유발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한국사회와 교회, 북한의 집단기억은 피해의식에 매몰되어 있음. - 남과 북 모두 상대편만 악마화하는 불균형적 기억의 지배. 전쟁기 정치적 학살이 남긴 집단 트라우마 치유 노력 미흡. - 기억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며, 현재적 관심과 필요에 따라 재구성될 수 있음. 따라서 어떻게 기억할지에 대한 기준이 중요함. - 망각이나 은혜가 아닌, 올바른 기억이 치유의 시작점. 3-1. 올바르게 기억하기
- 진실하게 기억하기 - 정의롭게 기억하기 - 피해자가 더 피해를 입지 않도록 기억하기 - 가해자가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기억하기 -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를 위해 기억하기 - 함께 살아갈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기억하기 3-2. 재기억의 가능성
- 재기억이 가능한 이유는 기억이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라 경험된 과거의 요소를 해석하고 그것을 재료 삼아 가능한 미래 예측을 산출하는 실천적 능력이기 떄문. (Monyer&Gessmann, 2015) - 집합기억의 사회적 전승은 매체, 행사, 기념물 등의 의도된 문화적, 공간적 상질물 또는 표상을 필요로 함. 현재가 과거를 문화적으로 재구성하고, 그렇게 구성된 문화적 기억이 다시 현재를 구성함.(Aleida Assmann, 2011) - 안전 확보, 재기억화, 그리고 더 높은 가치와의 재연결로 긍정적 경험이 이루어지면서 외상후 성장 가능. 4. 용서와 화해 - 올바르게 기억하기의 핵심은 “용서와 화해” -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의 기억은 가해자를 처벌하는 응보적 정의를 넘어서, 가해자까지 회복시키는 회복적 정의의 차원을 보여줌. -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대신하여 처벌받음으로써 정의의 요구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가해자의 회복과 구원을 이루는 것. 4-1. 집단학살을 막은 서기훈 목사의 용서
4-2. 아버지를 잃은 김명혁 목사의 용서 4-3. “우리는 북한을 용서합니다”
4-4. 분열을 넘어 통합으로
- 제주도 하귀리 사례: 2003년 영모원 건립, 매년 유족회-경우회 공동참배→가해-피해 이분법의 극복 - 국가 사례: 남북전쟁 이후 화합 이룬 미국, 내전 이후 역사 기억법을 제정한 스페인, 2차대전 이후 독일-프랑스, 독일-폴란드 공동 역사교과서를 펴낸 독일과 유럽 국가들→미래를 위한 대통합 5. 결론: 기억 치유로서의 통일 - 한국전쟁 발발은 개인의 독단적 적화 야욕이라기보다, 국제적 냉전구조의 열화로 이해해야 함. - 전쟁의 제1목적은 국토통일이었음. - 전선이 밀고 밀리면서 가해와 피해의 구분이 어려웠음. - 가족상실과 이산의 슬픔은 남북 모두 마찬가지. 우리는 모두 냉전체제의 희생자. - 선과 악,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상대를 인간화하려는 역지사지의 노력 필요. - 함께 살아갈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, 남과 북의 화해와 관계 회복을 위한 재기억을 교회가 선도해야 함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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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세미나 갤러리 (세미나 이미지 및 갤러리 이미지들) | 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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